퇴근 후엔 칭다오 한 잔: 칭다오 여행 2일 차-3(캉유웨이 생가 青岛康有为故居)
칭다오 지하철 3호선 5·4광장역에서 회천광장칭다오 지하철 3호선 5·4광장역에서 회천광장( 汇泉广场)역에 도착했다.
말이 3호선이지 칭다오 지하철 중에서 첫번째로 개통한 노선이다.
2016년 말에 개통해서 깨끗한 편이다.
밖에서 본 회천광장 역. 분위기는 묘하게 8-90년대 스타일이다.
여기서부턴 칭다오 구시가지의 느낌이 난다. 회천광장은 독일이 칭다오를 점령했을때 군사 훈련장과 경마장 등을 만들었던 자리이다.
회천상업광장. 칭다오에서 번자체 보기가 어려웠다.
구시가지 느낌이 나면서, 오랜 양식의 건축물도 보인다.
회천광장에서 소어산쪽으로 올라가다 본 청도 문등로 소학교(文登路小学).
"教育是国之大计、党之大计。" "교육은 나라의 대계, 당의 대계"라는 표어가 중국임을 실감나게 한다.
이 문구는 거의 모든 학교에 붙어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칭다오 소어산 문화명인거리가 나온다.
그중 하나가 캉유웨이 고택(康有为故居)이다.
3층까지 있는 대저택이다.
캉유웨이는 변법자강운동으로 청나를 바꾸려고 했던 사람이다. 광서제의 힘을 얻어 권력을 잡고, 개혁하려고 했으나, 서태후 등의 강경보수파에 의해 물러나게 된다. 당시 동아시아의 근대는 일본으로 표상되었기에 일본과 손잡으려고도 했었다.
칭다오 캉유웨이 고택은 캉유웨이가 말년에 칭다오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 곳으로, 지금은 캉유웨이 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캉유웨이의 사상부터 건물까지 전시해 두었다.
캉유웨이는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평등주의를 이야기하고, 경제에선 사회주의에 가까운 이야기를 해서인지 오늘날 중국에서도 활용하는 듯.
그러나 우생학적인 이야기도 수용하면서 비판을 받기도 한다.
들어가려고 하는데, QR을 하란다. 칭다오 첫 관광지여서 뭔지 몰랐는데, 입장료와 방문 통제를 다 QR로 하는 듯. 몰라서 헤매니까 그냥 들여보내줬다.
칭다오 캉유웨이 기념관은 하절기(4월 1일부터 10월 31일)는 9시부터 17시까지, 동절기에는 9시부터 16:30까지 운영한다.
어찌저찌 잘 들어왔다. 중국스러우면서 독일스럽고, 전통적이면서 근대적인 집이다.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1층부터 둘러본다. 근대 중국의 대표적인 인물의 업적과 일대기를 전시했다. 각 지방과 관련있는 사람들의 전시관이 있는데, 연계해서 전시하는 듯. 조금 아는 사람들 위주로 보면
쑹칭링(宋庆龄). 손중산의 아내로 유명하고, 중국 2대 부주석이었다. 중국국민당에 반감이 있었고, 중국의 잔다르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리다자오(李大钊) 중국공산당을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루쉰(魯迅). 원래 중국 토호쿠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였으나, 소설가가 되었다. 민족을 주제로한 소설가로 유명하다. 민족이 정치적이라기 보단 봉건성, 식민지의 문제의식을 다루었다.
그 외에도 엄청 많은데, 모두 소개하기는 어렵겠지. 내 전문 분야도 아니다.
외부에도 관련 전시는 이어진다. 명인고택기념관연맹차원에서 다루는 듯.
야외 전시 첫번째는 량치차오(梁啓超)이다. 중국의 국민성, '중화민족'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다. 캉유웨이와도 관련이 있는데, 변법자강이 실패하면서 같이 일본으로 망명갔다.
그리고 1층의 다른 방에는 중국세계유산을 자랑하는 곳도 있다. 여긴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서 캉유웨이 기념관을 본다.
캉유웨이(1958~1927), 자(字)는 광하(廣廈), 호는 장소(長素), 무술변법 후에는 호를 갱생(更生)으로 바꿨다. 광동 남해사람이며, 세간에선 남해선생이라고 불렀다. 근현대문화선구자, 국학대사, 자산계급 유신변법 지도자로, 중서에 정통하며 전 세계를 누볐다. 1923년 6월 23일 부터 이 건물에 살면서 천유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제 전시관을 돌아볼까.
산동성 애국주의 교육 기지로도 선정되었다.
캉유웨이 집무실로 시작해서
캉유웨이의 생애 전시도 있고,
인생에서 세계를 돌아다닌 경험도 있다.
캉유웨이의 다양한 모습을 강조한다.
또 다른 방으로 가면,
문화예술인의 면모을 강조하며 서화코너도 있다.
그리고 세계를 누비고 다녔기에, 거기서 깨달은 것들을 위주로 전시한다. 내용이 꽤 깊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캉유웨이가 말년을 보낸 방이 나온다.
말년을 이 방에서 보냈다. 1927년 3월 31일에 이 방에서 돌아가셨다고.
아는 것이 부족해 짧게 보고 나왔다.
캉유웨이 기념관을 나와서 소어산으로 올라간다. 이 동네 대부분이 옛날집으로, 아직 사람이 산다. 정겨운 동네이다.
가는 길 곳곳에 누가 살았던 고택의 표지가 있다.
현대 중국 불교학계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이런 단지가 남아있는 것도 중국이라 가능하겠지. 우리나라 같았으면 대학가 근처라 원룸지어서 세 받고 있을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