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생각하는 거지만, 블로그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제 언제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는 블로그. 그래도 꼭 남기고 싶은 것이 있어서 들어왔다.

 

'노트르담 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 20주년'

 

나에게 노트르담 드 파리는 고등학생 시절로 올라간다.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기.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음악선생님이셨다. 나를 항상 바른 길로 인도해주셨고, 아껴주신 분이었다. 음악선생님께선 음악시간을 교양을 쌓는 시간으로 활용하셨다. 입시로 힘든 고등학생들에게 뮤지컬, 오페라 등을 보여주셨다. 당시 나에게 답게 음악 시간은 쉬어가는 시간이었달까?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도 그때 처음 접했다. 물론 원작은 워낙 유명한 고전인만큼 줄거리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뮤지컬로 접한 후로는 뮤지컬은 예술이라는 생각과 함께 언젠간 내 눈으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후 입시를 하고 상경하면서 고등학교 시절도, 예술에 대한 낭만도 잊고 살았다. 고등학교 은사님이 생각나면 노트르담 드 파리의 수록곡을 들은 적은 있어도 선생님께 연락도 안했었다. 뭐 사실 예술은 나와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도 했고, 먹고 살기 바빴다는 게 가장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그러던 중 J와 광화문 뒷 골목에서 저녁과 맥주를 먹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 세종문화회관에 들렀다. 사실 처음 들어와본 곳이었다. 신기해서 둘러보던 중 노트르담 드 파리가 상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늦은 사람을 위해 보여주는 작은 모니터 속에선 벨레가 한참이었다. 모니터는 작았지만, 거기엔 나의 추억이 있엇다.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 바로 J와 꼭 보자고 약속했고, 시간도 알아보고, 금방 예매도 했다. 고맙게도 J가 예매를 해줬다.

노트르담 드 파리 서울

내가 본 날에 프롤로 역으로 다니엘 라부아 아저씨가 나왔다. 고등학교 시절 캐스팅을 유일하게 계속한 분이다.

노트르담 드 파리 다니엘 라부아

한쪽에는 포토존이 있었다. 나와 J도 함께 찍었다.

노트르담드 파리 프렌치 오리지널 서울

그리고 시간에 맞춰서 자리로 갔다. 세종문화회관은 처음인데 R석은 이런 느낌. 앞에 사람이 있으면 뒤통수만 보인다.

세종문화회관 R석

뮤지컬은 중간에 쉬는 시간을 빼면 거침 없이 몰아친다. 사랑을 매개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노래로 줄거리가 이어진다. 

여기서 미리 써놓은 관람평을 남긴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감상문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원작은 빅토르 위고가 노트르담 대성당의 벽면에 새겨진 아낭케(Ananké, 숙명)’라는 글씨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숙명은 무엇일까.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일지도 모른다.

무대는 1482년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교 프롤로는 어릴 적 버려진 콰지모도를 거두어 길렀으나, 그는 기형적인 외모 때문에 세상에서 끝내 받아들여지지 못한 인물이다. 성당 앞 광장에는 부랑자와 집시들이 모여 살고 있었고, 그들의 지도자 클로팽은 이라 불릴 만큼 따르는 이들이 많았으나, 사회는 그들을 이단자, 반사회적인 존재로 낙인찍고 배척했다. 근위대장 페뷔스는 그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권력이었다.

그 속에서 춤추는 집시 에스메랄다는 이야기의 중심에 선다. 그녀를 둘러싸고 세 남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주교인 프롤로는 원칙적으로 금욕해야 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뮤지컬에서도 종교와 결혼하고, 학문과 사랑하며 젊은 날의 욕구를 지웠다고 했다. 그러나 성당 앞에서 춤을 추는 에스메랄다를 보고 지금까지의 신앙심과 의지가 흔들리며, 자신이 가진 권위로 에스메랄다를 소유하려고 한다. 이런 자신에게 당황하는 모습도 보인다. 페뷔스의 사랑은 약혼자를 배신하면서까지 추구한 순간적인 욕정이었다. 뮤지컬에서는 순간의 욕망과 영원한 사랑, 천국과 지옥 등을 대비하며 고민하지만 결국 선택은 욕망이었다. 오직 콰지모도의 사랑만이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함을 지녔다.

에스메랄다를 향한 욕망은 곧 갈등을 낳았다. 콰지모도는 프롤로의 명령으로 그녀를 납치하려다 페뷔스에게 체포당한다.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납치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바퀴에 매달리는 형벌에 처하고, 물도 마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주인인 프롤로도 외면하지만, 거기서 콰지모도를 도와주는 건 에스메랄다뿐이었다. 이 장면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보인다.

에스메랄다는 처음에는 페뷔스에게 마음을 주었다. 도움을 주어서일까? 에스메랄다가 페뷔스를 좋아하는 것을 안 프롤로는 둘을 미행한다. 그리고는 둘이 같이 있을 때 페뷔스를 칼로 찌른다. 그리고 그 죄는 에스메랄다가 뒤집어쓴다. 거기에 클로팽을 비롯한 집시들도 체포당한다. 페뷔스는 다시 약혼자에게 돌아가지만, 에스메랄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페뷔스를 기다린다.

여기서 콰지모도의 진실한 사랑이 보인다. 그러나 가장 진실한 사랑은 가장 가혹한 운명을 맞이한다. 콰지모도는 클로팽과 집시들을 탈옥시키고, 에스메랄다는 클로팽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여 노트르담 대성당 콰지모도 곁으로 숨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프롤로와 페뷔스는 집시들을 공격하여 클로팽이 죽고, 에스메랄다는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한다. 프롤로가 에스메랄다를 죽인 것을 안 콰지모도는 프롤로를 성당에서 밀어버려 죽인다. 자신을 키운 사람을 죽일 정도로 에스메랄다를 사랑한 것이다.

뮤지컬의 끝은 절규로 끝난다. 에스메랄다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콰지모도는 그녀의 시신을 끌어안고 춤을 추어 달라, 노래해 달라 절규한다. 원작에서 2년 후 성당 지하에서 발견된, 서로를 끌어안은 두 구의 유골은 그 사랑의 끝을 상징한다. 떼어놓으려 하자 바스라졌다는 장면은, 죽어서 사랑을 이루었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의 비극을 넘어, 인간의 숙명과 사회의 모순을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2막이 시작될 때 흘러나오는 노래 속에 시대의 흐름이 담겨 있다. 르네상스가 도래하며 신의 시대는 저물고, 인간 중심의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인간이 맞이한 것은 자유와 평등이 아니라 새로운 억압과 모순이었다. 종교의 권위는 무너졌으나, 귀족과 국가 권력은 여전히 사람들을 통제했다. 그 속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은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숙명이 아닐까.

프롤로가 무너져가는 종교 권위를, 페뷔스가 귀족적 권력과 통제를 상징한다면,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 클로팽은 버림받은 민중의 형상이다. 역설적이게도, 사회로부터 외면받은 이들만이 끝까지 사랑을 노래하고, 목숨까지 바쳐 희생한다. 반면 권력을 앞세워 사랑을 억압하려는 자들은 결국 파멸을 맞는다. 이는 사랑을 빼앗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또 하나의 숙명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처럼 노트르담 드 파리는 결코 밝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그 어두움 속에서 끝내 빛나는 것은 인간성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권력과 차별, 억압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명작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리카르도 코치안테의 음악이 주제를 잘 담아서 전하는 전율도 있지만, 시대와 인간을 관통하는 질문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마주한 어두운 숙명은 인간성으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뭐라고 썼지만, 뮤지컬 배우들의 연기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뮤지컬이 끝나면 배우들이 나와서 인사해준다.

노트르담 드 파리

너무나 한국적인 것은 떼창도 준비했다는 점. 물론 프렌치 원작이라서 불어로 해야 한다.  

대성당들의 시대 가사를 창에 띄워준다.

대성당들의 시대

그리고 뮤지컬은 끝. 1층에서 한국 상영에 앞서 인사도 한다. 다니엘 라부아 아저씨 은퇴한다는 말도 있던데, 다시 한국에 올 수 있으려나.

노트르담 드 파리 다니엘 라부아

이제 30주년 때나 보려나.

노트르담 드 파리 20주년

그냥 떠나기가 아쉬워 프로그램 북 한 권 샀다.

노트르담 드 파리 굿즈

11월에는 세종, 대구, 광주에서도 이어서 한다니 많은 분이 보셨으면 좋겠다.

세종문화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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