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33관음성지 순례를 위해 양양 낙산사로 가는 길.
옛날 추억도 생각나서 인제에서 한계령을 넘어 양양으로 넘어갔다.
원통에서 44번 국도를 따라간다. 가는 길도 멋있다.

한계령 가는길

한계령은 양귀자의 소설 원미동 사람들에 실린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양희은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양희은 - 한계령(1985)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양희은의 한계령

양희은의 한계령을 흥얼거리다 보니 한계령 정상 부근의 한계령 휴게소에 도착한다. 김수근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시외버스, 고속버스가 다닌다.

한계령 휴게소
한계령 휴게소

한편에는 백두대간 '오색령'이라는 비석도 있다.
양양군에서 주장하는 지명인데, 조선시대에 오색령이라 불렸다고 한다.
여러 분쟁이 있다가 공식지명이 한계령으로 지정되고, 오색령은 양양군에서만 사용하기로 했다.
인제군이 한계령 노래비를 세우려고 했는데, 양양군이 반대했다는 기사를 보면 분쟁은 아직 있는 듯.
한계령 휴게소는 양양군 땅에 있어서 노래비 세우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백두대간 오색령

그래도 한계령 휴게소에서 보는 설악산 일대가 장관이다.
발 아래 첩첩산중이 펼쳐진다.

한계령
한계령

여기서 설악산으로 올라갈 수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입산 금지기간이라 못 올라가봤다.
위에는 한계령 길을 뚫다가 돌아가신 공병대를 기리는 비석도 있다고 한다.

대신 오색, 양양쪽으로 내려가다보면 다른 비석을 만날 수 있다. 제125 공병대대 비석.

공병 125대대

처음으로 한계령의 군사용 비포장 도로를 만든 대대라고 한다.


비석의 앞과 뒤에 이 비석의 내용이 있다.

개척(開拓)의 완결점(完結點)
개척 정신은
깊고 험한 설악에 도전하여
동서를 잇는데
승리하였노라
육개성상의 대역사는
오늘 여기서 왼결되나니
자연의 신비속 여기에
우리의 개척 정신을
영원히 기념하노라
최후의 연결점에서
1971.11.30
제125야전공병대대 개척자들
제125공병대대 비석

사람들의 무관심에 방치되었다.
조심히 한계령을 내려가야지.

2022년 11월 19일에 다녀온 한계령 글을 마칩니다.
모든 항목은 직접 지불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12.20  빈빈뱅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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